CEO가 알아야 할 디자인의 모든 것 – 01

CEO가 알아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기업이든 CEO는 한정된 자원을 투입해 비즈니스의 성장을 이끌 가장 중요한 사안을 찾아 집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지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라면 업무를 전담할 임직원이 없어 CEO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일의 종류도 많고 알아야 할 지식도 많습니다. 상품개발에 모든 업무시간을 투입해도 부족한데 그 와중에 사람도 뽑아야 하고 비전과 가치도 공유해야 하고 세무회계도 처리해야 하죠. 회계만 보더라도 재무제표 부터 결산까지 들여봐야만 할 문제들이 넘칩니다. HR, 회계와 같이 복잡한 경영 업무를 전담할 담당자가 있다 해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개념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HR, 회계, 세무와 같이 모든 기업 경영에 공통적인 부분을 다루는 많은 입문서와 지침이 있으며, 외부조달이 가능한 컨설팅 서비스도 존재합니다. 디자인은 어떨까요? 경영의 관점에서 CEO를 위한 디자인 안내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 서적은 대부분 디자인 전공자 또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쓰였습니다. 재무제표를 작성하기 위해 회계의 탄생과 역사를 세세하게 외울 필요가 없는 것처럼, CEO에게는 어떤 폰트가 더 나은지, UI의 최신 기술이 무엇인지, 더 고급스러운 색상이 무엇인지보다는 비즈니스의 성장을 이끌 전략적인 판단에 적용할 디자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CEO가 알아야 할 디자인의 모든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경영과 디자인을 어떻게 연결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CEO를 위해 준비한 연재 글입니다. UX 디자인이 무엇인지 타이포그래피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기업이 마주한 과제와 현재의 경쟁 속에서 어떻게 디자인 전략을 펴야하는지,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성장을 위해 어떻게 디자인하는 것이 좋은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경영이 사업기획서가 아니듯, 디자인은 모양이나 형태가 아니다

디자인이 뭘까요? 감이 잘 안 잡히고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십 년 넘게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저 역시 누군가 ‘디자인’을 말할 때마다 과연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저와 상대방이 서로 다른 의미로 ‘디자인’을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단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사이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와 이야기 중에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분명한 이유가 있더군요. 너무 단순한 이유이기도 했고요. 바로 상황에 맞게 ‘Design’을 번역해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때그때 맥락에 맞게 번역하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한데 그냥 ‘디자인’이라고 말하고 상대방이 이해하리라 생각해왔던 것이죠.

「로고와 이쑤시개」라는 책에서는 ‘디자인’의 여러 가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하나의 문장에 구겨 넣었습니다. 


Design is to design a design to produce a design.

①디자인은 ②디자인을 ③디자인하기 위해 ④디자인을 만드는 것이다.


디자인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됨을 한 문장으로 보여준 것이죠. 물론 사전을 찾아보면 몇 가지 의미가 더 나오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미는 모두 이 한 문장에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고와 이쑤시개」는 홍콩폴리텍대학의 존 해스캣 John Heskett 교수가 쓴 것으로 국내에도 번역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미콜론 2005

제일 앞에 있는 ①‘디자인’은 이 문장의 나머지 부분이 설명하려는 일반적인 의미·개념으로서의 디자인을 지칭하는 명사입니다.

두 번째 ②‘디자인’은 명사로 완성된 결과물의 모양과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고요. 사용자 관점에서 말하는 디자인은 거의 이 두번째 의미로 쓰인다고 보아도 되겠습니다.

세 번째 ③‘디자인’은 동사로 설계하는 행위, 개발 또는 계획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④‘디자인’ 역시 명사인데 ‘시안’이나 ‘설계’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최종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밑그림’이나 ‘계획안’이지요. 세계적인 가구 박람회인 밀라노 페어의 어떤 전시 부스에서 누군가가 ‘디자인’을 말할 때는 자사의 신상품 또는 새로 개발한 프로토타입을 의미할 가능성이 큽니다.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디자인’을 적절한 번역과 설명 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들립니다. 디자인 에이전시의 회의실에서라면 개발 중인 시안을 의미할 수도 있고 최종 결과물의 모양이나 형태를 말할 수도 있지요. 결국, 상황에 맞춰 ‘디자인’이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필요한 경우 ‘디자인’ 바로 뒤에 해당하는 의미를 작은 글씨로 표기하겠습니다.

디자인은 회계나 서비스와 같은 지속적인 기업 활동이다.

CEO가 알아야 할 디자인(개념)은 이 모두를 포함하지만 어느 한 가지 의미에 집중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기업 활동으로서의 디자인(개념)은 소비자가 바라보는 디자인(개념)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디자인(결과, 모양, 형태)을 판단하는 것은 기업이 디자인(개념)을 이해하는 것과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가 건강과 환경 같은 이유로 상품의 제조 정보를 필요로 하지만, 기업이 원가나 유통과 같이 관리의 대상으로 제조 정보를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죠.

경영 관점에서 말하는 디자인은 회계나 서비스와 같은 지속적인 기업 활동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CEO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고객에게 제공하는 상품 혹은 서비스의 일부로 디자인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기업의 디자인 요소’를 설명할 때 예제와 함께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설계’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상황에 따라 ‘시안’이나 ‘모양’ ‘형태’ 등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영어의 ‘디자인’을 전부 ‘設計설계’로 표기합니다. 만약 중국인이 設計Shèjì라고 한다면 ‘design’으로 직역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디자인’을 ‘설계’로 번역하는 습관은 중국 시장도 대비도 겸하고,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디자인 = 모양 / 형태 / 완성된 상품의 스타일’ 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인거죠.

다음 포스팅 부터는 기업이 디자인 하는 대상, 즉 ‘기업의 디자인 요소’ 를 하나씩 짚어보면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포스팅 요약

  • 디자인은 그때그때 의미가 다르다.
  • 디자인은 회계나 서비스와 같은 지속적인 기업 활동이다.

관련 도서

스티브 잡스의 10가지 교훈

Guy Kawasaki
Guy Kawasaki | Wikipedia

지난 11월 14일, 코워킹 스페이스 하이브아레나에서 열린 페이스북 그룹 상품기획 연구회 11월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상품기획 연구회 조형일님이 진행한 이번 모임은 린스타트업 위크 2016의 비디오를 함께 보고 네트워킹하는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시도와 학습의 빠른 순환을 강조한 린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의 성장 뿐만 아니라 대기업, 정부 등의 조직에서도 혁신을 창조하는 방법론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린스타트업 위크는 다양한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학습과정과 체험을 공유하는 컨퍼런스입니다.
공식 웹사이트유스트림을 통해 강연 동영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통해 유료등록한 참가자에게는 모든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코드를 제공하는데, 올해 행사 영상이 지난주에 유스트림을 통해 대부분 공개되었습니다. (한글자막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11월 모임에서 함께 시청한 가이 카와사키 Guy Kawasaki의 ‘스티브 잡스의 10가지 교훈’ 강연을 번역해 올립니다. 창업가 정신을 잡아주는 ‘훌륭하고 짧지 않은’ 강연입니다.

창업가들은 여러 가지 도전과 난관과 마주하게 됩니다. 투자도 받아야 하고 벤처캐피털도 상대해야 하고 주식상장도 해야죠. 창업가에게 닥친 가장 큰 난관은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이점을 확실히 해두죠. 트위터에 올리세요. 저를 더는 팔로우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계속 그러고 다닐 거에요.

발표 시간이 14분 11초가 주어졌네요. 아마 넘기게 될 것 같아요. 어쩌겠어요? 내년에 저를 안 부를 것도 아닐 텐데. ㅎㅎ 어차피 시작도 지연됐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맙시다.
저는 스티브 잡스의 10가지 교훈을 이야기할 거에요. 창업가인 제가 스티브로부터 배운 10가지 교훈이죠. 저는 1883~1887, 1995~1997년에 애플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매킨토시 사업부에 있었는데 틀림없이 ‘캘리포니아 역사상 병적으로 콧대 높은 사람들egomaniac이 가장 많이 모인 집단’이죠. 이거 대단한 거예요. 왜냐면 캘리포니아에는 병적으로 콧대 높은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요. 매킨토시 사업부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병적으로 콧대 높은 사람들egomaniac이 가장 많이 모인 집단’이라는 타이틀을 30년 넘도록 유지했을 거예요. 페이스북이 최근에 그 기록을 깬 거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30년 넘는 기간 동안 타이틀을 차지하는 건 우리일 거예요.

테크 분야의 발표를 많이 보셨죠? 저도 많이 봤습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강의가 후지고 장황하죠. 최악의 조합이에요. 강의가 후져도 짧다면 괜찮아요. 강의는 훌륭한데 좀 길다면 나쁠 것도 없죠. 후진데 긴 강의는 정말 나빠요. 멍청한 데다 거만한 거랑 비슷하죠. 저는 TOP10 방식으로 발표할 거라, 강의가 후져도 앞으로 몇 개만 참으면 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스티브 잡스에게 배운 10가지 교훈이에요.

1. 소비자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Customers can’t tell you what they need.

소비자는 현재 주어진 것만 생각해요. 더 빠르고 싼 걸 원하죠. 소비자는 진정한 혁신을 말하지 못해요. 그래서 소비자에게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는 건 아주 위험해요. 80년대에 애플이 물어봤을 때, 소비자들은 더 크고 빠르고 저렴한 애플II를 원했어요. 그 누구도 소프트웨어도 없고 개발언어도 없고 조그만 디스크 2장이 들어가는 램도 부족한 쓰레기를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우린가 만든 게 바로 그거였어요. 소비자들은 여러분이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못합니다.

2. 혁신은 ‘다음 파도’에 찾아온다.
Innovation happens on the next curve.

‘이번 파도’에 변화가 찾아오는 법은 없어요.
아날로그 시대의 사례를 들어보죠. 얼음 1.0은 얼음을 채취하던 사업이었어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한겨울에 얼어붙은 호수나 강에서 말에 톱을 달고 얼음덩어리를 잘라 냈죠. 30년쯤 지나서 얼음 2.0의 시대가 왔어요. 얼음 공장은 계절에 상관없이 얼음을 생산했어요. 지역도 상관없어졌죠. 할렐루야~ 겨울도 필요 없고 추운 날씨도 필요 없어요. 호놀룰루, 싱가포르, 상파울루… 삶이 훨씬 나아졌습니다.얼음 3.0의 시대. 이제 냉장고가 얼음을 만들기 시작했죠. 인부가 트럭에 얼음을 실어나르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얼음 공장이 생긴 거에요. 이건 PC라고 합니다. Personal Chiller죠. 이 사례의 훌륭한 점은 얼음 채취나 얼음 공장 사업체 중에 냉장고 비즈니스를 시작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냉장고 회사 중에 바이오테크 기업으로 변화한 기업도 없지요.
전부 ‘이번 파도’ 안에서 태어나고 사라졌어요. 현재의 ‘업’을 바탕으로 자신을 규정했지, 제공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얼음 채취, 얼음 공장, 냉장고 모두 ‘편리함과 온도를 낮추는 것’이라는 똑같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얼음 채취에서 얼음 공장으로 진화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얼음 공장이 냉장고 사업으로 혁신했을 것 같지만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죠. 여러분 중 몇 명이 코닥 카메라를 사용하나요? 누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쓰죠? 몇 명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컴퓨터를 사용하나요? 레밍턴 타자기는 어때요? 스미스 코로나 타자기는요? 기업은 절대 ‘다음 파도’로 점프하지 못해요. 진정한 변화는 ‘다음 파도’를 타고 옵니다.

3. MVVVP를 만들어라.
Make a MVVVP

존경하는 에릭 리스(린스타트업 저자)가 제안한 린스타트업의 핵심 컨셉의 사생아를 만들어봤어요. 에릭이 저보다 책을 많이 팔아서 엄청 질투하고 있어요. 그가 최소 요건 제품 MVP minimum viable product라는 멋진 컨셉을 만들었습니다.
전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V를 두 개나 더 집어넣을 거에요. 알겠죠? 제가 집어넣을 첫 번째 V는 가치value에요. 요건을 충족하지만 가치 없는 걸 만들고 있을 수도 있어요. 제가 포함할 또 다른 V는 입증함validated 이에요. 데이터나 프로토타입 상품, 서비스가 비전을 입증해야하죠. 자 이제 여러분들은 최소 요건을 갖춘 가치 있는 (비전을) 입증하는 상품을 만드는 거에요.
매킨토시는 세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효했고, 비전을 입증했으며 가치가 있었죠. 매킨토시는 세상을 바꿨습니다. 애플에서 반대 사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플이 어느 날 레이저프린터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할수도 있겠죠. 애플 스토어에 가서 매킨토시도 사고 애플 브랜드의 레이저프린터를 살 수도 있다고 칩시다. 유용하겠죠. 사람들이 살 거예요. 그런데 이게 가치가 있을까요? 전혀 없어요. 세상은 이제 새로운 레이저프린터를 원하지 않아요. 프린터가 애플의 비전 중 하나라도 입증하나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냥 프린터일 뿐이에요.
여러분의 기준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MVVVP를 만드세요.

4. 큰 도전은 큰 변화를 일으킨다.
Big challenges cause big changes.

스티브에게 배운거에요. 큰 변화를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더 큰 도전을 직면할 수 있도록 해야죠. 개인용 컴퓨터를 하나 더 만듭시다. 중년층을 위한 스냅챗을 만듭시다. 그러면 안되요. ㅎㅎ 큰 도전이 필요해요. 스티브가 매킨토시로 사업에 도전했을 때 그건 또 다른 컴퓨터를 선보이려던게 아니었어요. 그건 IBM이 세상을 점령하는걸 막자는 거였죠. 전체주의자의 세계, 조지 오웰이 예측한 미래를 막는 거였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 사진이에요. 큰 도전은 거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5. Less is more.

다섯 번째 스티브의 교훈은 Less is More입니다.
애플을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아주 최근의 애플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USB-C만 보면 너무 멀리 간 것 같기도 해요. ㅎㅎ 애플 직원들은 SD카드도 안 쓰고 외부 모니터로 PT할 일도 없는가 봅니다. 비디오 단자도 없애버렸거든요. 그러면서 동글은 사랑하는 것 같은데… 이해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더 줄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제공합니다. 이 개념을 설명할 이미지를 두 장 보여드릴게요.

이건 스티브의 PT 자료에요. 슬라이드를 꼼꼼히 볼까요. 그림이 아주 아주 큽니다. ‘iTunes’라는 텍스트는 200포인트 크기고요. 화면 아래 문장 ‘The best Windows app ever written’은 90포인트 크기죠. 여러분들 중에서 자료 슬라이드에 가장 작은 글자 크기가 90포인트인 분이 있나요? 아무도 없을 거예요. 이게 스티브 잡스 에요. 가장 스티브 잡스다운 모습이죠.
상대적으로 반대편의 개념은 아마도 More is More일텐데 이를 대표하는 사람은 빌 게이츠 에요.

말해보세요.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슬라이드인가요?
둘 다 억만 장자에요. 저는 빌 게이츠가 그의 PT자료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누군가는 빌 게이츠처럼 슬라이드를 만들면서도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을거예요. 또 스티브 잡스처럼 큰 폰트를 사용하고 문장을 줄인다고 해서 제2의 스티브 잡스가 된다는 보장도 없죠.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여러분이 빌 게이츠처럼 슬라이드를 만들고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Less is More

6. 주장을 뒤집는 건 당신이 지적이라는 증거다.
Changing your mind is a sign of intelligence.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주장을 뒤집기로 유명하다는 사실에 충격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가 항상 옳았기 때문에 유명한 것으로 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스티브의 주장 뒤집기의 좋은 사례를 알려드리죠.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기본적으로 비공개 시스템이었어요. 만약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려면 사파리의 플러그인이어야 했어요. 그는 아이폰(의 시스템)을 보호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스티브에게 말했어요. ‘스티브가 맞아요~ 아이폰 시스템을 잠가주세요. 잠겨있는 아이폰을 맘 편히 쓰길 원해요.’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스티브는 완전이 마음을 바꿨어요. 180도로 돌아섰죠. 아이폰은 운영체제를 열어서 어떤 앱이든 설치할 수 있게 바꿨어요. 그러자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티브~ 아이폰 시스템을 오픈하다니 천재적이에요!’ 중요한 내용은 스티브가 마음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가 마음을 바꿨기 때문에 정책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었던 거예요. 주장을 바꾸는 건 당신이 지적이라는 증거이지, 우매함이나 당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7. 엔지니어(개발자)들은 예술가다.
Engineers are artists.

일곱 번째 교훈은 엔지니어들을 예술가처럼 대하라는 겁니다. 브럴 스미스의 사진입니다. 매킨토시 사업부의 분석 엔지니어에요. 스티브는 엔지니어들과 아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어요. 왜냐면 엔지니어들이 ‘완성’ 시킨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모든 비전과 열정, 디자인의 감성적인 부분까지 모두 엔지니어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스타트업에 오직 두 개의 직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만들고 누군가는 팔아요. 그게 전부에요. 나머지는 전부 쓸데없어요. 만들거나 팔아야 해요. 그게 다예요.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브럴이나 다른 엔지니어들-은 예술가에요. 그들을 예술가처럼 대해야 합니다.

8. 마케팅은 독특한 가치다.
Marketing = unique value.

여덟 번째 교훈은 여러분이 창업가로서 마케팅에 대해 알아야 할 전부입니다. 아주 단순한 도표에요. 축이 두 개 있습니다. 수직은 독특함, 수평은 가치에요. 매킨지에서 일하거나 매킨지의 제안을 본적이 있다면 알거에요. 2 X 2 측정법이에요. 도표 오른쪽 위 포지션을 원하는 경우 매킨지한테 5억원을 내야하는 걸 제가 공짜로 알려드리죠. 여러분 모두 오른쪽 상단으로 가고 싶어하죠. 우선 4개의 포지션을 다 살펴볼까요.
오른쪽 아래는 제가 ‘DELL 코너’라 부르는 포지션이에요. DELL 코너는 유용하고 가치가 있지만 독특하지 않아요. DELL 코너에서는 항상 가격경쟁을 해야 하죠. 드롭박스와 마이크로소프트와 아이클라우드와 구글이 경쟁합니다. 전부 비슷하죠. 전부 클라우드고 모두 가격으로 경쟁하죠.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요. DELL은 성공했죠. 하지만 언제나 가격으로 경쟁해야 합니다.
왼쪽 상단을 볼까요. 정말로 독특하지만 아무 가치가 없어요. 이 포지션은 정말 바보짓이에요.
왼쪽 하단은 제가 ‘dog com 코너’라고 불러요. 여기는 독특하지도 않고 가치도 없죠. 온라인에서 개 사료를 파는 것과 같아요. 온라인에서 개 사료를 파는 것의 문제점은 가치가 없다는 점이에요. 물론 개사료 값을 할인할 수 있겠죠. 하지만 배송료와 운영비가 들어요. 게다가 캔에 든 사료를 배송할 때 누군가 집에서 받아줘야하죠. 결국 오프라인하고 똑같은 비용이 되버려요. 가치가 없죠. 독특하지도 않아요. 왜냐면 실리콘벨리에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벌써 pet.com mypets.com epets.com lastpets.com 같은 회사에 투자했기 때문이에요. 지금부터 사업 제안을 들려드릴께요. 여러분들이 절대 이딴 제안을 하지 않도록 말이죠.
‘3억 명의 미국인 4명 중 한명이 개를 키웁니다. 7천5백만 마리의 개들이 하루에 2캔의 사료를 소비하죠. 1억 5천만 개의 개사료가 하루에 소비됩니다. 하루에 1억 5천만 개가 팔리는 시장이죠. 우리 회사의 끝내주는 프로그래머 — 어느 주말에 술처먹다 한 번 만났던 — 가 시장의 1%를 가져가는 건 어렵지 않아요. 1억 5천만 개 중 1%면 150만 개죠. 여기에 365일을 곱해야죠. 왜냐면 개는 꼭 먹어야 하니까요. 이건 B2B가 아니라 B2C에요. 더 정확히 말하면 B2D죠.’
이래서 세상에 pet.com mypets.com epets.com lastpets.com이 생겨난 거예요. 절대로 이런 제안 하지 마세요. 감히 ’저는 그저 하루 1억 5천만 개가 팔리는 시장의 1%만 차지하려고 합니다.*’ 따위의 사업 제안하지 마세요. 여러분 중에 이렇게 제안해 본 사람 있죠? 분명히 있어요. 이렇게 제안하지 않아본 사람 손들어봐요. 여러분 여기 거짓말쟁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포지션은 오른쪽 상단이죠.
아주 독특하고 가치 있다는 뜻입니다. 제 생각에 첫 번째 아이팟은 아주 독특했어요. 클릭 휠과 같은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죠. 사람들은 이런 인터페이스를 받아들였어요. 저렴하게 대형 레코드사의 음원을 쉽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도 독보적이었어요. 이게 바로 마케팅의 성배와 같은 거예요. 당신이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독특하고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파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상품이 독특하고 가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전세계 모바일 시장의 1%를 차지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9. 혁신가는 부정적인 의견을 무시한다.
Innovators ignore naysayers.

혁신가는 부정적인 의견을 무시합니다. 무시해야만 합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반대쟁이(naysayer)가 있습니다. 저는 멍덩치*들(bozos)이라 부르는데 세상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활하고 고약한 몸냄새 나는 짠돌이죠. 일제 시계에 녹슨 자동차 따위를 가지고 있고요. 보자마자 낙오자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인데 전혀 위험한 멍덩치가 아니에요. 왜냐면 낙오자들이나 낙오자들의 말을 듣거든요.
정말 위험한 멍덩치들은 온통 검정색 수트를 입고 있어요. 위험한 멍덩치들은 이름이 ‘i’로 끝나는 걸 많이 가지고 있어요. 아르마니 Armani 마세라티 Maserati 람보르기니 Lamborghini 페라리 Ferrai … 아우디 Audi는 괜찮아요. 이들은 성공한 멍덩치들이죠. 현명하기 때문에 돈 많고 유명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부분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은 운이 좋았던 거에요. 현명함 때문에 부유하고 유명한거면 톰 크루즈가 말하는 영적인 복음을 새겨들어야겠죠. 킴 카다시안한테 가족 부양을 배우고요. 이건 위험합니다.
멍덩치는 감기 예방처럼 다뤄야 합니다. 감기 걸리는 걸 어떻게 막죠? 약간의 멍덩치 바이러스를 주입해야 진짜 멍덩치 바이러스를 막아낼 항체가 생기는 거죠. 제가 여러분께 멍덩치 바이러스를 좀 뿌릴 거에요.

‘전 세계에 컴퓨터는 5대면 충분하다.’
-토마스 왓슨.IBM 창업자. 1943-
전 집에 맥이 5대 있어요. 세상 모든 컴퓨터가 제집에 있는 거죠.

‘전화기란 물건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생각하기에 결점이 너무 많다.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를 주지 못하는 기계다.’
-웨스턴 유니언의 내부 메모. 1876-
1876년에 웨스턴 유니언은 전화기 사업을 걷어찼어요. 어이쿠! 비트코인이나 스퀘어일수도 있죠 페이팔일 수도 있고요. 전화기 회사가 인터넷 회사로 변화하지 못합니다.

‘집에 컴퓨터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켄 올슨. 디지털 이큅먼트 지주회사 창업자. 1977-
DEC를 만든 위대한 창업가죠. 수많은 컴퓨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개인용 컴퓨터는 무시했어요. 이래서 엄청나게 성공한 얼음 공장 사업이 냉장고 사업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진 필름 생산 사업이 디지털 사진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죠.

멍덩치들이 여러분을 헷갈리게 두지 마세요. 누군가가 여러분이 실패할 꺼라 말하는 게 성공의 조건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죠. 하지만 누가 실패할거라고 해서 시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테고 그때 정말로 실패하는거죠. 그게 진짜 시험이에요.

*멍덩치 = 멍청+덩치. Bozo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만 두뇌회전이 빠르지 않은 사람. 적당한 말이 없어서 만들었습니다 .  🙂

10. 어떤 것은 믿어야만 볼 수 있다.
Some things need to be believed to be seen.

열 번째 교훈은 스티브에게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믿어야만 볼 수 있다는 교훈이죠. 거의 모든 사람은 이 반대로 말하죠. ‘보면 믿을 게’ 하지만 여러분들(창업가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믿으면 그때는 볼 수 있습니다. 매킨토시 소프트웨어 전도사로 일했던 저는, 사용자도 없고 저작 도구도 없는 데다 천만 원짜리 개발 라이센스를 사야 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했어요. 매킨토시가 사람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창조적으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믿도록 설득하는 일이었지요. 충분히 많은 개발사를 설득해서 소프트웨어가 생겨나면, 매킨토시가 정말로 그렇게 보일 것이라 믿은 거에요. 창업자의 삶은 이래야 합니다. 사람들을 설득해서 볼 수 있게 만드는 거죠. 그게 창업가정신이에요. 그것이 바로 애플을 세계 최초의 700조 기업으로 만든 이유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상을 바꾸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기 온 이유는 바로 그거에요. 여러분은 의미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서지 돈을 벌러 여기 온 게 아니에요. 구글이 정보를 민주화하고 애플이 컴퓨터를 민주화 한 것, 그것이 여러분들이 할 일이죠. 세상을 바꾸는 거에요. 이것이 제가 스티브로 부터 배운 창업과 혁신에 대한 10가지 교훈입니다.
고맙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멘토로 유명한 가이 카와사키는 2011년부터 ‘스티브 잡스의 12가지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강연을 해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12개를 10개로 줄이기도 했는데 함께 보시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2013년 TEDxUCSD 강연 영상

2011년 Silicon Valley Bank 강연 영상

2011년 C|net 기사

구글과 디자인 매니지먼트

아랫글은 2006년부터 구글의 visual design lead로 일했던 더그 보우먼이 2009년 구글을 떠나면서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Goodbye, Google’이라는 제목의 포스트를 일부 번역한 것입니다. 라이코스와 와이어드닷컴의 디자인을 주도하면서 IT 디자인 구루(Guru)로 불리던 그가 폭풍 성장 중이었던 구글을 떠났다는 소식은 구글의 독특한 기업 문화와 더불어 여러 매체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뉴욕타임즈, Cnet

디자인 매니지먼트가 정착하지 않은 기업이 어째서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왜 기업의 철학과 태도가 디자인 정책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잘 설명해주는 사례입니다.

오늘은 저의 구글 생활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저는 거의 3년 전쯤 인하우스로 구글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닥부터 팀을 꾸렸지요. 재능있는 디자이너를 고용해 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강령으로 visual design을 구글에 도입했고,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 팀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이 잘 지내기 바랍니다. 그들에게는 도전적인 일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제 저는 떠날 때입니다.

제가 입사한 2006년, 이미 구글은 이미 7년 된 기업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 하나 없이 기업을 경영하기에 7년은 매우 긴 시간입니다. 당시 구글에는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있었지만, 대부분 컴퓨터 공학이나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를 전공한 사람들이었고 정책을 결정할 통솔력을 가진 임원진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디자인 정책과 디자인 요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디자인을 평가할 근거가 바닥나기 마련입니다. 모든 디자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저마다 잘못을 지적하느라 목소리를 높입니다. 확고한 판단근거가 없기때문에 의심이 끼어듭니다. 직관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게 맞는 방향일까?” 개발자엔지니어로 가득 찬 기업답게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발엔지니어링을 동원합니다. 모든 판단을 간단한 로직으로 정의한 다음 감성적인 요소를 무시한 채 오직 데이터만 보는 거죠. 데이터가 마음에 들면 통과, 데이터가 나쁘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갑니다. 결국, 데이터가 모든 평가의 족쇄가 되어 기업을 마비시키고 과감한 디자인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구글이 어떤 파란색을 사용할지 결정하려고 41가지의의 서로 다른 파란색을 테스트했더라는 소문은 사실이에요. 얼마 전에도 괘선의 두께로 3픽셀이 좋을지 4픽셀 아니면 5픽셀이 좋을지 논쟁하면서 제 의견을 증명하라고 요구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환경에서 일할 수가 없어요. 이런 사소한 디자인 결정 때문에 논쟁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세상엔 디자인으로 해결할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글 이야기는 잠시 두고, 우리나라 기업의 상황을 묘사해보겠습니다.

아무런 정책 없이 발주한 신제품의 디자인시안이 들어오면, 대표는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중간 관리자 대부분과 막 들어온 신입사원까지 회의에 참석시킵니다.

디자이너의 설명이 끝나면 대표는 회의에 참석한 전원에게 디자인시안의 좋아 보이는 점과 아쉬운 점을 코멘트하라고 지시합니다. 맥락 없이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은 각자 자신의 취향과 눈높이를 근거로 열심히 디자인아트웍을 평가합니다. 왜 발전적인 의견이 나오지 않냐며 살짝 질책하던 대표는 자신의 안목을 바탕으로 매우 주관적인 디자인 수정을 요청합니다.

회의 참석했던 임직원들은 소모적인 회의라고 생각하면서 디자인시안 평가를 자신의 업무와 별개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대표는 자신의 안목이 반영된 수정안을 보며 기분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좋은 디자인인지 판단이 서지 않자 처음부터 디자인시안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시안은 대표의 안목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고 회의는 정말로 형식이 되었으며 디자이너는 고민하는 걸 관두고 잔금을 빨리 받기만 바라게 되었습니다.

과장을 더 하긴 했지만 몇 가지 실제 사례를 하나로 섞어놓은 것입니다.

구글의 사례와 다른듯해도 여기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품/서비스를 만드는 주체인 기업이 상품의 디자인 평가를 포기하고 외부에 전가했다는 점이지요. 구글의 사례에서는 개발자엔지니어들이 서로 다른 41가지의 파란색을 테스트로 결정하자는 ‘논리적 합의’를 바탕으로 아주 사소한 디자인마저 소비자가 평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정답은 소비자테스트 데이터가 보여줄 테니 우리는 질문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죠. 우리나라 기업의 시나리오에서는 기업 구성원 모두가 판단을 남에게 떠안기면서 결론이 나지 않는 시안개발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상품/서비스를 평가하는 데 있어 사용자의 반응을 살피고 테스트하는 것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사용자테스트 없이 상품을 내놓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모한 일이지요. 하지만 41가지의 파란색이나 1픽셀 단위의 괘선 두께는 사용자테스트의 대상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도 애매할 가능성이 있는 디자인 요소를 사용자 판단에 맡기는 일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지만 얻는 것이 너무나 사소하기 때문이지요. 설령 소비자가 어떤 파란색을 가장 좋아하는지를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핵심적인 상품의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는 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물론, 구글은 성장의 방향성을 잘 찾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이 되었습니다. 2016년의 구글 서비스는 ‘플랫디자인’이라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어내는 등 철학과 방향성에 적합한 일관성 있는 디자인 정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더그 보우먼을 영입한 것도 구글만의 디자인 언어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고 여겨질만큼 조금씩 오랜 시간에 걸처 디자인 정책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구글이 성공적으로 디자인 정책을 구축했다고 이런 깨알같은 소비자테스트 사례를 디자인 정책의 개발 방법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합니다.

모듈형 스마트폰 Project ARA
일체형 스마트폰 Pixel, Pixel XL

구글은 대대적으로 상품/서비스를 런칭했다가 주저 없이 폐기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이 미래’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이제는 쏙 들어간 ‘구글 글래스’가 그렇고 최근 자체 브랜드로 새로운 스마트폰 ‘픽셀’ ‘픽셀 XL’을 선보이면서 몇 년간 개발해온 모듈형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를 접어버리기도 했지요. 매년 사라지는 구글 서비스도 많아서 이것만 모아서 보여주는 연재 기사도 있습니다. 보통 기업이라면 심각한 경영 위기를 초래할만한 시행착오를 막대한 수익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만큼 어디까지나 이례적인 경우로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기업의 철학과 태도는 디자인 정책을 좌우하게 되며 최종적으로 상품에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더그 보우먼의 글을 통해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구글의 뒷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기도 하구요.

상품이 탄생하고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에서 기업은 디자인과 만나고 정책에 기반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기업이 가진 중요한 역할이라면 기업의 디자인은 기업이 가장 잘 알아야 하겠죠. 매니지먼트 없이 지금의 디자인이 개선되길 바라는 것은 마케팅 없이 시장에 상품을 내놓고 알아서 잘 팔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